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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회고록)

grep.jj 2023. 12. 29. 01:26
그래, 나도 회고록을 써야겠다!

 

회사에 있는 내내 굳게 다짐하고 퇴근했다.

이런 마음이면 회고록 정도는 가뿐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쓰기 버튼을 누르니

캄캄하다.


1Q - 나는 소모품

올해 초 회사 분위기는 삭막함의 절정이었다. 일부 직원들이 권고 사직 당하면서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 초기 대응처럼 정말 빠르고 신속하게 사람들이 사라졌다. 적어도 인수인계와 작별 인사 정도는 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과 아쉬움이 남았다. 그 후에는 전사 메일을 기다렸다. 인력 감축에 대한 회사의 통보 메일이라도 읽으면 어지러운 속이 좀 달래 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조직개편이 마무리된 후에도 끝내 회사는 그 어떠한 안내도 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쓰는구나,

아...

나도 소모품이네?

 

2Q - 그저 웃지요

협업은 어렵다. 협업 상대 개발자가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물을 주지 않는다. 나는 어찌 되었든 불완전한 결과물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잘못을 꼬집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분도 내가 밉겠지만 상대 개발자가 예뻐 보일 리 없다. 부정적인 생각의 바다에 빠져 버렸다.

내 직군을 QA로 잘못 알고 있나? 

내가 이걸 왜 지원하고 있지?

왜 메일을, 메신저를 안 보지?

나라면 적어도 수정된 기능에 대한 테스트를 열 번은 돌려볼 텐데...

간단한 버그는 수정 후 테스트 없이 결과물을 던질 때는 그저 속으로 웃고만 말았다. 이 정도 인내심이면 내 몸에도 사리가 하나쯤은 생겼을 것 같다.

 

3Q - 😮💨

나는 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다. 내가 보내는 시간은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회사에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 회사는 심심하다.

 

4Q - 오늘도 자람

내가 속한 팀은 회사의 무인도 같은 곳인데, 나는 그 무인도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터베이스 성능 향상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회사에는 관련 전문가가 없고 내가 가진 지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없다. 구글링 해가면서 설정 값을 조정하고 있다. 그러다 개념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구해 보기도 했다.

음- 뭔 말인지 모르겠군🧐

어? 이거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내용이랑 비슷하네?

대충 이런 것 같은데 확신은 못함

이 회고록을 작성하는 지금이 대충 이런 것 같은데 확신은 못함 상태인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올해는 크게 얻은 건 없는 해이지만 잘 버텼다.

도서관에서 15건의 책을 빌렸고, 80% 이상이 개발 관련 책이다. 

지식이 크게 늘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잘 버틴 2023년이었다.

내년에는 더 괜찮아진다고 믿는다.